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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번 우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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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월호 2023년 12월호 이야기 꾸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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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번 우편함


매일 우편물이 배포되면 아트는 학교 로비로 걸어 내려가 놋쇠 문이 달린 우편함이 있는 벽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우편함마다 달린 문은 가로세로 10cm인 정사각형 모양에 우편물을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복잡한 잠금장치가 달려 있었다. 231번 우편함이 아트의 것이었고 12월 내내 매일 확인했지만 확인할 때마다 비어 있었다.

오늘은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전날이었다. 아트는 오랫동안 우편함 앞에 서 있었다. 그냥 돌아갈까도 생각했지만 오늘은 무언가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우편함을 확인하기로 했다.

마침내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손을 뻗어 다이얼을 돌리고 231번 우편함을 열었다. 쓸쓸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희망을 걸어보면서.


사무치게 그리운 고향

13세인 아트는 모히칸 부족 출신의 북미 원주민 소년으로 캔자스주 로렌스에 있는 정부의 기숙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아트는 집이 있는 위스콘신의 메노미니 아메리카 원주민 보호 구역에서 부모, 세 자매, 두 형제와 함께 살고 싶었지만 보호 구역에는 학교가 없었다. 미국 정부는 로렌스에 있는 해스컬 사립학교와 계약을 맺었고 부족 협의회 지도자들도 아이들의 교육에 동의했다.    

더운 여름 몇 달과 짧은 2주의 크리스마스 방학을 제외하고 해스컬 학교가 아트의 집이 되었다. 학교는 엄격한 군대식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음식은 질이 떨어졌고 집에서 엄마가 만들어 준 것과 전혀 달랐다. 아트는 검정과 빨강 체크무늬가 달린 유니폼 셔츠를 매일 입어야 했다. 그 옷은 자신이 교사나 마을의 다른 사람들보다 열등한 ‘인디언’임을 상징했다.

아트는 굴욕감을 느꼈고 외로웠다. 마음이 너무 아파서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눈에 가득 고인 눈물을 들키고 싶지 않아 일부러 다른 학생들의 눈길을 피했다. 가족이 있는 메노미니 보호 구역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매 순간 생각했다.

특히 이번 크리스마스는 더했다.

그들의 ‘고향’은 위스콘신이 아니었다. 원래 그들의 ‘고향’은 멀리 동쪽으로 이제는 뉴욕주라고 불리는 산간 지방에 있었다. 하지만 정부가 그 땅을 원했기 때문에 모히칸 부족 전체는 위스콘신의 낯선 숲과 황야로 ‘이주당했다.’ 그들이 낯선 곳에 도착했을 때 각 모히칸에게 새 이름이 주어지고 가족에게는 11만 평 정도의 땅이 주어졌다.

아트의 할아버지가 보호 구역의 집에 있는 아메리카 인디언 관리관을 찾아갔더니 새 이름들을 다른 사람들이 다 받아 갔다고 말했다. “그래서 당신에게는 저의 이름을 주려고 합니다. 저는 영국에서 왔고 제 이름은 처치입니다. 당신은 이제 조지 처치입니다.”

북미 원주민들에게 농부가 되도록 가르치기 위해 사람이 배정되었으나 잘되지 않았다. 그 대신 아트의 아버지는 건축업자가 되기로 선택했다. 토종 나무와 쉽게 구할 수 있는 슬레이트 블록을 사용해 동료 원주민들에게 튼튼한 집을 지어 주는 대목장이 되었다. 아트의 아버지는 세심한 일꾼이었지만 석조 건축은 고되고 아트를 비롯한 아들들의 일손이 필요했다. 그들은 오랜 시간 일했고 아주 천천히 성공적인 사업을 구축해 갔다.

11살이 되었을 때 아트는 학교에 갈 수 있는지 부모님께 물어보았다. 자식을 보내는 것은 부모에게 힘든 일이었지만 가족은 마침내 동의했고 보호 구역 관리인에게 기차표를 받아 멀리 캔자스로 갈 수 있게 되었다. 

아트는 배우는 것이 기뻤지만 방학을 기다리며 살았다. 특히 크리스마스를 기다렸다.


최고의 선물 

올해가 해스컬 학교에서 3년째가 되는 해였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방학이 없었다. 대규모 유행성 독감이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었고 미국 전역에서 사망자가 많았는데 특히 보호 구역에 있는 북미 원주민 사이에 유행하고 있었다. 학교 행정자들은 휴가를 다녀온 학생들이 독감에 전염되어 올 것을 두려워해 학교를 폐쇄하고 학생들을 격리시키고 모든 휴가 여행을 취소했다.  

아무도 크리스마스에 고향 집에 갈 수 없었다.

아트는 크리스마스 자체가 없어진 것 같았고 다시는 집에 갈 수 없을까 봐 걱정이 되었다. 

마침내 다이얼이 다 돌아 231번 우편함 문이 열렸다.

우편함 안에 작은 봉투가 놓여 있었다.

봉투 겉에 엄마의 거친 필체가 보였다. 서둘러 우편함에서 그것을 꺼내 자신의 재킷 호주머니 깊숙한 곳에 넣고, 차가운 캔자스 오후의 공기를 뚫고 내달렸다. 행복한 마음에 가슴이 터질 것 같았고 그의 발은 기쁨의 리듬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집에서 편지가 왔다. 엄마에게서!

순간, 걱정은 사라지고 모든 것이 좋아 보였다.

그는 기숙사 계단 아래 깊숙하고 조용한 곳, 누구도 찾을 수 없는 자신만의 특별한 곳으로 달려가 조심스레 봉투를 열었다. 봉투 안에는 엄마가 만든 단순한 엽서가 있었다.

“아들, 메리 크리스마스!” 어두운색 크레용으로 엄마가 쓴 글귀였다. 엄마가 직접 그린 예쁜 하트와 글이 보였다. “네가 집으로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어.” 예쁜 하트 밑에는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크리스마스와 가족에 대해 아트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이 요약된 두 단어가 오롯이 적혀 있었다.

“사랑해! 엄마가.”

엄마가 보낸 사랑의 엽서에는 한 가지가 더 있었다. 빛나는 10센트짜리 은화 한 닢을 조심스럽게 카드에 꿰매어 보낸 것이다. 그 돈을 어떻게 쓰라거나 왜 보냈는지 어떤 말도 없었다. 엽서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꿰맸을 뿐이었다. 그 돈으로 무엇을 할지는 온전히 아트의 몫이었다. 10센트 은화라니. 빨강·검정 체크무늬 옷을 입고 계단 밑에서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 소년에게 그것은 행운 그 자체였다. 

그는 엄지손가락으로 동전을 부드럽게 문지르며 엄마가 써 준 글을 읽고 또 읽었다. 크리스마스는 선물이 전부가 아니었다. 크리스마스는 가족이 전부였다. 가족들은 그를 사랑했다. 가족 모두 그가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족의 사랑이 담긴 엄마의 엽서가 자신이 받은 가장 멋진 선물이었다고 아트는 종종 말했다.

그 은화를 그는 결코 사용하지 않았다.



딕 더크슨 목사이자 이야기꾼으로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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